사건의 출발점
이 글은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공중밀집장소추행 혐의로 현장에서 붙잡히거나 역무실·지구대로 동행해 조사를 받은 피의자를 위해 썼습니다. 같은 사건의 피해자에게도 해당합니다. 이런 사건에서는 정식 피의자신문보다 먼저 현장에서 여러 기록이 만들어집니다. 체포 경위를 적은 현행범인체포서, 출동한 경찰관이 정리한 수사보고서,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쓴 진술서가 대표적입니다. 휴대전화 등을 압수했다면 압수조서도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승객이 많은 객차 안에서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고, 주변 승객이 피의자를 다음 역에서 내리게 한 뒤 역무원과 경찰관이 도착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피의자는 피해자, 주변 승객, 역무원, 경찰관에게 차례로 말을 하게 되고, 그중 일부가 경찰관의 기록에 옮겨집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 앞에서 했고 누가 받아 적었는지에 따라 아래에서 설명할 기준이 달라집니다.
당사자들이 나중에 가장 많이 묻는 경우는 현장에서 당황해 「죄송합니다」, 「닿았을 수는 있다」라고 한 말이 이런 서류에 적혀 있을 때입니다. 이후 조사나 재판에서 고의를 부인하면 그 기록이 그대로 유죄 증거가 되는지를 궁금해합니다. 기존 글들은 현장 기록을 꼼꼼히 남겨야 하는 이유와 CCTV·목격 진술의 역할을 주로 다뤘습니다. 이 글은 이미 남은 기록이 법정에서 어떤 규칙에 따라 증거로 쓰이거나 배제되는지를 기록 종류별로 나눠 설명합니다. 개별 사건의 결론은 기록의 실제 문구와 절차에 따라 달라지므로, 아래 내용은 판단의 틀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쟁점
붐비는 차량 안에서는 신체 접촉 자체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중밀집장소추행 사건에서는 접촉이 있었는지보다 추행의 고의가 있었는지가 다툼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피의자가 한 짧은 말이 고의를 인정한 것처럼 읽히면 그 기록의 비중이 커집니다. 첫째 쟁점은 피의자 본인의 말이 담긴 조서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항은 검사 아닌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인정할 때만 증거로 쓸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도 법 개정에 따라 2022년 1월 1일 이후 공소가 제기된 사건부터 같은 내용 인정 기준이 적용됩니다.
둘째 쟁점은 이 규칙이 피의자신문조서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서류에도 미치는지입니다. 현장에서 한 말은 대개 신문조서가 아니라 체포서나 수사보고서에 적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쟁점은 서류가 증거가 되지 못할 때 그 말을 들은 경찰관이 법정에 나와 증언하는 방식으로 같은 내용이 들어올 수 있는지입니다. 넷째 쟁점은 피해자가 현장에서 쓴 진술서의 취급입니다. 이 네 가지는 각각 다른 조문과 요건에 따라 판단됩니다.
증거로 쓸 수 있는지와 별개로, 적힌 문장을 어떤 뜻으로 읽을지도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몸이 부딪친 데 대한 의례적 사과일 수도 있고 추행을 인정하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기록에는 대개 말의 결과만 남고 그 말이 나온 질문이나 현장 분위기는 남지 않으므로, 법원은 앞뒤 정황과 함께 그 의미를 따로 평가합니다.
법원이 보는 판단 요소
법원은 서류의 제목보다 그 서류에 담긴 진술이 누구의 것이고 어떤 과정에서 나왔는지를 봅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말을 받아 적은 부분이라면 형식이 수사보고서이더라도 피의자신문조서와 같은 제한을 받는지가 다투어집니다. 반대로 경찰관이 직접 본 장면을 적은 부분은 피의자의 진술이 아니라 경찰관 자신의 진술로 취급됩니다. 대법원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촬영 사건에서 압수조서의 압수경위란에 적힌 경찰관의 목격 내용을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서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제312조 제5항에 따라 판단하였고, 피고인이 증거로 쓰는 데 동의한 그 기재를 자백의 보강증거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기록 종류별 기준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피의자신문조서: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가 됩니다. 내용을 부인하면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 체포서·수사보고서 중 피의자 발언 부분: 피의자의 진술을 옮긴 것이므로 피의자신문조서와 같은 기준으로 다투어질 여지가 큽니다.
- 체포서·압수조서 중 경찰관 목격 부분: 경찰관 자신의 진술로 보아, 작성자가 법정에서 진정성립을 인정하고 반대신문 기회가 보장되는 등 요건을 갖추면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 피해자 현장 진술서: 피해자가 법정에서 자신이 작성한 것임을 인정하고 피고인 쪽에 반대신문 기회가 주어지며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되었음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 경찰관이 법정에서 피고인의 현장 발언을 전하는 증언: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1항에 따라 그 발언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이 증명된 때에만 증거가 됩니다.
위 요건은 피고인이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때 문제됩니다. 형사소송법 제318조에 따라 피고인이 동의하면 서류는 진정한 것으로 인정되는 범위에서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공판 초기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목록에 대해 동의 여부를 밝히는 절차가 이 기록들의 쓰임을 사실상 정하는 자리가 됩니다.
증거능력이 없는 서류가 재판에서 완전히 의미를 잃는 것도 아닙니다. 판례는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해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는 조서라도 피고인의 법정 진술이 믿을 만한지를 다투는 탄핵증거로는 쓰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탄핵증거는 범죄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데 쓰이지 못하므로, 그 기록만으로 고의를 인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결과가 갈리는 지점
첫 번째 갈림길은 현장 발언 당시 진술거부권이 고지되었는지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진술거부권 등을 알리도록 정하고 있으며, 대법원은 이를 고지하지 않고 얻은 피의자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다만 고지 의무는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를 두고 실질적으로 수사를 시작해 피의자 지위가 생긴 뒤에 문제됩니다. 그래서 경찰관이 도착하기 전 피해자나 주변 승객에게 한 말인지, 체포 뒤 경찰관의 질문에 답한 말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갈림길은 현장 발언을 빼고도 남는 증거가 있는지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10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유일한 증거일 때 유죄로 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경찰관의 목격 기록, 피해자의 법정 진술, 영상처럼 자백과 독립된 증거가 있으면 그것이 보강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아 반대신문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피해자 진술서의 증거능력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결국 현장 발언 한 줄보다 그 말을 제외하고도 남는 기록이 무엇인지가 결과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용 예시로, 하나의 수사보고서에 「피의자가 손이 닿은 것은 맞다고 말함」이라는 부분과 「피의자의 손이 피해자 쪽을 향해 있는 것을 보았음」이라는 부분이 함께 적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피고인이 앞부분의 내용을 부인하면 그 부분은 유죄 증거에서 빠질 여지가 크지만, 뒷부분은 작성한 경찰관이 법정에서 증언하고 반대신문을 거치면 증거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때 변호인의 반대신문은 경찰관이 어느 위치에서 얼마 동안 보았는지, 혼잡한 차량 안에서 시야가 가려지지 않았는지에 맞춰지게 됩니다.
세 번째 갈림길은 기록이 얼마나 구체적인지입니다. 「피의자가 범행을 인정함」처럼 요약된 문장은 어떤 질문에 어떤 말로 답했는지 알 수 없어 신빙성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접촉 부위, 손의 위치, 차량 혼잡도,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한 시점을 구체적으로 적은 기록은 내용에 따라 어느 쪽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진행 시 유의점
피의자 쪽에서는 현장에서 어떤 서류가 만들어졌고 그 안에 자신의 말이 어떻게 적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준비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현장에서 누구에게, 경찰관 도착 전인지 후인지, 어떤 질문에 어떤 말을 했는지 시간 순서대로 적어 둡니다.
- 체포나 동행 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을 언제 고지받았는지 기억나는 대로 기록합니다.
- 조사 뒤 조서를 열람할 때 사실과 다른 표현이 있으면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에 따라 고쳐 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반영되지 않으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을 조서에 남겨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 기소 뒤에는 증거기록 열람·복사로 체포서와 수사보고서의 실제 문구를 확인하고, 증거 동의 여부를 서류별·부분별로 정합니다.
증거 동의는 서류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대해서만 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경찰관의 목격 부분에는 동의하고 피의자 발언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판례는 증거조사가 끝난 뒤에는 동의를 철회할 수 없다고 보므로, 첫 공판 전에 기록을 충분히 검토해 어느 부분을 다툴지 정해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피해자 쪽에서는 현장 진술서만으로 절차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피고인이 증거 동의를 하지 않으면 법정 증언이 요구될 수 있으므로, 신뢰관계인 동석 등 증인 보호 절차를 법원에 요청할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현장에서 적은 내용과 이후 진술이 어긋나지 않도록 당시 상황을 정리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체포된 사람의 권리와 수사 절차에 관한 일반 안내는 경찰청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사건에서 법원이 현장 기록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사법정보공개포털의 판결서 열람 서비스로 찾아볼 수 있으나, 공개 범위가 제한되고 사건마다 사실관계가 다르므로 결론을 그대로 옮겨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리 설명이며, 구체적인 대응은 기록을 직접 검토한 변호인과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