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출발점
이 글은 강제추행으로 고소하려는 피해자와 고소를 당해 조사를 앞둔 피의자를 위해 썼습니다. 붙잡거나 밀치는 것처럼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는 행동은 없었고, 위협하는 말이 나온 뒤에 신체 접촉이 있었던 경우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소리 내면 가만두지 않겠다", "말하면 너만 손해다" 같은 말을 들은 뒤 접촉이 이어진 상황입니다. 이런 사건에서는 "때리거나 붙잡지 않았고 상대가 거부하지도 않았으니 강제추행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자주 나옵니다.
강제추행죄는 형법 제298조에 따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경우에 성립하며,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현행 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문은 바뀌지 않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협박'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은 바뀌었습니다. 이 글은 이미 많이 다뤄진 기습추행이나 위력에 의한 추행이 아니라, 말로 위협한 경우에 협박의 정도가 쟁점이 되는 사건만 다룹니다.
이런 사건은 보통 고소가 접수되면 수사기관이 당사자의 진술을 듣고 주변 자료를 모은 뒤 기소 여부를 정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기소되면 법정에서 같은 사실관계를 다시 다투게 됩니다. 말로 한 위협이 협박에 해당하는지는 수사 단계의 진술 조서에서 처음 정리되므로, 이 단계에서 어떤 표현이 기록되었는지가 이후 재판에서도 출발점이 됩니다.
쟁점
종전 판례는 강제추행의 폭행·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수사와 재판에서는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 저항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는지가 자주 다투어졌습니다. 피해자가 뚜렷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협박이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2023년 선고한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기준을 변경하였습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폭행은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협박은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이면 된다는 취지입니다. 판결문 원문은 사법정보공개포털의 판결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쟁점은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었는가"보다 "그 말이 일반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의 고지였는가"에 가깝습니다.
이 변경이 실무에서 갖는 의미는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종전에는 피해자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져 협박의 강도를 거꾸로 추정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행위자가 무엇을 말했고 그 말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다만 기준이 바뀐 것은 협박의 정도에 관한 부분이며, 협박이 추행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구조와 추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법원이 보는 판단 요소
변경된 기준에서 협박에 해당하는지를 정할 때는 여러 사정을 함께 봅니다. 판결 취지에 따르면 행위의 목적과 의도, 구체적인 행위 태양과 내용,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당시 정황, 행위자와 상대방의 관계, 그 행위가 상대방에게 준 고통의 유무와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늦은 밤 둘만 있는 공간에서 체격이 큰 사람이 했는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농담처럼 했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종전 기준과 변경된 기준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요구되는 정도: 종전에는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가 필요하였고, 변경 후에는 일반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해악의 고지로 충분합니다.
- 심리의 중심: 종전에는 피해자의 저항 여부와 그 정도가 주로 다투어졌고, 변경 후에는 행위자의 말과 행동의 내용, 그리고 당시 정황이 중심이 됩니다.
- 피해자 반응의 의미: 종전에는 저항하지 않은 사정이 협박의 정도를 부정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변경 후에는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협박이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 그대로 유지된 부분: 폭행 자체가 추행에 해당하는 기습추행의 법리는 변경 대상이 아니며, 추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별도로 이루어집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 상황을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실제 판례가 아니라 판단 요소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입니다. 인적이 없는 주차장 차 안에서 행위자가 문을 잠근 채 "내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 뒤 접촉했다면, 장소의 폐쇄성과 말의 내용이 함께 평가됩니다. 반대로 같은 표현이 여러 사람이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장난처럼 오갔다면, 그 말이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의 고지였는지부터 다시 따지게 됩니다. 기준이 '일반적으로 보아'라고 되어 있으므로, 그 상황에 놓인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결과가 갈리는 지점
기준이 완화되었다고 해서 위협적으로 들리는 말이 모두 협박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지된 내용이 구체적인 해악인지, 단순한 감정 표현이나 부탁에 그치는지가 먼저 가려집니다. 해악의 고지가 있었더라도 그것이 추행의 수단으로 쓰였는지, 즉 협박과 추행 사이에 연결이 있는지도 따로 판단합니다. 위협하는 말과 접촉 사이에 시간 간격이 길거나 그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면 이 연결이 다투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결과가 갈리는 지점은 증명입니다. 말로 한 협박은 흔적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그리고 전후 메시지나 통화 기록 같은 주변 자료가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협박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사안에 따라 다른 조문이 검토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조문이 적용될지는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반론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진술의 신빙성을 볼 때 법원은 말의 표현이 조사 때마다 같은지, 당시의 감정이나 주변 모습처럼 직접 겪지 않으면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살핍니다. 세부 표현이 조금 달라진 것만으로 진술 전체가 배척되지는 않지만, 핵심 문장이나 순서가 크게 바뀌면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 피의자 쪽에서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부인과 "말은 했지만 위협의 뜻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방어이므로, 어느 쪽인지를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일관성이 유지됩니다.
진행 시 유의점
적용 시점과 관련해서는 판례 변경과 법률 개정을 구별해야 합니다. 이번 변경은 조문을 고친 것이 아니라 대법원이 해석을 바꾼 것입니다. 형사재판에서는 원칙적으로 재판 시점의 대법원 해석이 기준이 됩니다. 행위가 판례 변경 전에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종전 기준이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이 점이 다투어진다면 변호인과 상의하여 판단을 받는 것이 적절합니다.
양측이 미리 정리해 둘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위협하는 말의 정확한 표현과 시점, 장소, 그때 주변에 있던 사람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당사자의 관계와 상하 관계나 의존 관계가 있었는지를 정리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위협하는 말과 신체 접촉 사이의 시간 간격과 그 사이의 상황 변화를 순서대로 적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 사건 전후의 메시지와 통화 기록, 다른 사람에게 알린 시점과 내용은 원본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도 정리해 둘 만합니다. 변경된 기준에서도 정황을 판단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마친 뒤에는 진술 조서를 열람하면서 위협하는 말이 실제 표현대로 적혔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말의 어조나 앞뒤 맥락이 빠진 채 요약되면 협박의 정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른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정정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메시지 자료는 화면 캡처만 남기기보다 원래 기기와 대화방을 함께 보존해 두면 작성 시점과 전후 대화를 확인하기 쉽습니다.
피해자는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만으로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당시 들은 말과 정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피의자는 "물리력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만으로는 충분한 방어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의 실제 의미와 맥락, 그리고 협박과 접촉 사이에 연결이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별 사건의 결론은 구체적인 증거와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집니다.